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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회심과 초기 생애, 수도회의 설립과 확산, 자연사랑과 환경보호

by 라벤더 헤이즈 2024. 6. 4.

 

1. 프란치스코의 회심과 초기 생애

 

프란치스코 성인(1181/1182-1226)은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부유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조반니 디 베르나르도네였으나, 어머니는 그를 프란체스코(프랑스 사람)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젊은 시절 프란치스코는 사교적이고 활기찬 청년으로,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파티를 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의 상업 활동을 도우며 부유한 삶을 살았던 그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도 꿈꾸며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1204년,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와 페루자 간의 전쟁에 참여하다가 포로로 잡혀 1년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신체적 고통과 함께 깊은 내적 변화를 겪게 했습니다. 석방 후 그는 병에 걸려 오랜 기간 동안 회복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인생의 목적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205년, 프란치스코는 스폴레토에서의 전투에 다시 참가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꿈에서 그는 "너는 종이 되고 싶으냐, 주인이 되고 싶으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를 통해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의 회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심 후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생활을 버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며 겸손하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폐허가 된 성 다미아노 성당을 복원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고 믿고,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 성당을 복원하려 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큰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법정에서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과정에서 프란치스코는 "이제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을 따르겠다"라고 말하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길에서 만난 나병환자에게 입맞춤을 하며 그들을 돌보는 등 극도의 겸손과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에 감동을 받아 그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09년에 그의 첫 추종자들과 함께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설립하게 되었으며, 이는 가난과 겸손을 강조하는 새로운 수도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심과 초기 생애는 세속적 성공과 쾌락을 버리고 신앙과 사랑, 겸손을 실천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었으며, 이는 이후 그의 삶과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회심은 단순한 종교적 체험을 넘어서, 당대의 사회와 교회에 큰 변화를 일으킨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프란치스코 수도회(프란치스코회) 설립과 확산

 

프란치스코 성인(성 프란치스코, St. Francis of Assisi)은 1209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작은 형제회, Order of Friars Minor)를 설립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설립은 프란치스코의 회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는 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난과 겸손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고, 이를 통해 그의 첫 추종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초기 멤버들은 프란치스코와 함께 아시시 근처의 작은 교회인 포르치운콜라에서 모였습니다. 이들은 가난과 겸손, 형제애를 중심으로 한 생활을 추구하며, 복음을 설교하고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수도회의 규율(라틴어로 '레 굴라')을 작성하여, 모든 형제들이 무소유의 삶을 살며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1209년, 프란치스코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로마로 가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수도회의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교황은 프란치스코의 열정과 순수함에 깊은 인상을 받아 구두로 수도회를 승인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공식적인 시작을 의미하며, 교회의 인정을 받은 수도회는 더욱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설립 초기부터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프란치스 코는 수도회의 급속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과 가난을 유지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수도자들에게 무소유의 삶을 살며, 복음을 전하고,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지속하도록 지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221년과 1223년에 두 차례에 걸쳐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규율을 승인받았습니다. 이 규율은 수도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 원칙과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였고, 수도회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체계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더욱 조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회의 확산은 유럽 전역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직접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 또한 각지로 파견되어 수도회의 정신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데 헌신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사망 후에도 수도회는 계속해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후계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수도회의 정신을 유지하고 발전시켰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중세 유럽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현대까지 그 영향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과 수도회의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생애와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3. 프란치스코의 자연 사랑과 환경 보호

 

프란치스코 성인(성 프란치스코, St. Francis of Assisi)은 자연과 모든 생명체를 깊이 사랑했던 인물로, 그의 자연 사랑과 환경 보호에 대한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연을 단순히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지 않았고,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물로써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의 삶과 행동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자연 사랑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피조물의 노래'(Canticle of the Creatures)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 노래는 태양, 달, 별, 바람, 물, 불, 땅, 그리고 죽음을 포함한 모든 자연 요소들을 형제나 자매로 비유하며,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고 노래합니다. 그는 자연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보았으며, 이 노래를 통해 모든 피조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피조물의 노래'는 중세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동물과의 특별한 관계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아시시 근처의 도시인 구비오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던 늑대와 평화를 맺은 일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늑대와 대화하여 그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늑대는 더 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프란치스코가 모든 생명체와 평화롭게 공존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 다른 일화로는 프란치스코가 새들에게 설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길을 가던 중 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을 보고 멈춰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새들은 그의 말을 경청하며 떠나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이는 그가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의 자연 사랑은 그가 죽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 속에서 평화를 찾았고, 그의 마지막 요청 중 하나는 알몸으로 땅에 누워 자신의 몸을 흙으로 되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깊은 바람을 나타냅니다. 프란치스코의 사상은 현대 환경 보호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란치스코를 환경 보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가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며 살아온 삶이 오늘날의 환경 보호 활동에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은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현대적 환경 윤리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연 사랑과 환경 보호 사상은 그의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은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고 모든 생명체를 존중해야 함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실천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